10704년 12월 9일

친애하는 파엔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 당신이 알려준 취침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나는 공상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소.

시작은 좋았습니다. 내가 눈송이이면서 물방울이라면 세상을 어떻게 느낄지 상상하는 건, 적어도 생각을 줄이기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열매였다가, 새였다가, 어느 순간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더 큰 고래가 되어 바닷속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습니다. 오로지 느끼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란 참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더군. 그래서 잠깐은 아주 유기체의 형태를 떠나 내가 바위라고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무기물에도 영혼이 있는지는 지구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라 생각하오. 조금 더 내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내 고향에 살던 조상들은 토종 곡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미치광이 나라가(보다시피 나도 말씨가 부드럽지 않으므로 당신이 이 표현을 쓴 것에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자기 문화에서 비주류적인 이를 멸칭으로 부르는 작자들을 경멸하는 것뿐입니다.) 내 고향 나라를 점령한 이후로는 농업 형태가 획일화되면서 보다 수익성이 있는 품종들을 주로 재배하게 되었소. 차 재배 산업이 자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지. 이제 그런 믿음이 공유되던 시대란 안타깝게도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또 고향 이야기를 시작했군. 당신의 나르졸레 이야기를 나 같은 지구인이라고 아주 못 알아듣지는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기디움 연구가 왜 중요한지,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인 나조차도, 비록 아주 다른 맥락에서라도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다시 돌아가서, 영혼 탐험을 하던 나는 마침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모습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소. 같은 영혼이라는 마음으로, 그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자 했지만 끝내 어느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화가 나기만 했습니다.

결국 또다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해두겠습니다. 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연인 사이였던 사람이 나를 떠나갔습니다. 상대방이 단호하게 거부해서 이제는 더 이상 연락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디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냥 사과하고 빌어야 했을까, 처음부터 이렇게 행동했다면, 저렇게 말했다면, 그러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까… 실은 나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당신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집니다. 적어도 한심해 보인다는 건 압니다.

또 하나 답하자면 나는 우주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이 나와의 상담에 만족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있다고 일정을 빠지는 일은 없었지만… 우주에서 만나는 내담자들과 관련해서는 공부할 것이 훨씬 많고, 공부를 했음에도 직접 겪어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은 두 배로 많고, 내게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의 숙제라고 할까, 연구라고 할까, 어느 쪽이든 당신이 안고 있는 과제는 성공적이길 바라겠소. 나는 지금 과거완료형으로 모든 분야에서 아름답게 실패해오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성공을 보면 배가 조금 아프겠지만, 적어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음을 담아,

바타차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