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04년 12월 30일
친애하는 파엔타,
탐사선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즐긴 모양입니다.
인류들은 보통 이 바보 같은 날을 혼자서만 보내는 일을 매우 딱하게 여깁니다. 나는 이게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주위의 관습을 따르며 살아온 인류인지라 당신이 탐사선을 떠돌기만 했다고 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습지 않소.
다른 영화가 아니고 이전에 당신이 감상을 공유해준 걸 보았습니다. 고전 영화를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이걸 보면 또다시 머리끝까지 화가 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평온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조금 놀랐습니다. 인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음식을 먹어대서 나도 홍콩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나 했던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라 고기는 먹지 않지만 말이오.
그랬습니다만 막바지에 남자가 사원 같은 곳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이 의아하게 생각했다던 제목 말인데, 내 성미 탓인지 아니면 상담사의 삶을 살아와서인지 몰라도 내게는 의아하지는 않았소. 내가 보기에 이걸 만든 사람은 과거에 빠져들지 않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머릿속의 동그랗게 닫힌 고리 안에 사는 과거는 계속 구르고 굴러서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돌이킬 수 없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겠지.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시시때때로 그 과거에 머리를 처박고 과거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게 만듭니다. 어떤 순간이 정말로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품은 순간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낚아채고 싶어하는 과거의 매혹이 그만큼 강렬하고 무서운 것이어서 그런 것 아니겠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기보다 가장 머리를 처박고 싶은 순간이라고 옮겼으면 합니다.
나히들이 만드는 작품이 궁금합니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내게도 공유해주십시오. 당신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주제의 작품을 찾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적지 않았는데, 번역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지 말씀해주십시오. 필요하다면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지구에서의 실종 사건들에 대해 물어주었으니 적겠습니다. 내가 사는 대륙에는 문제가 많지만 내 부모 형제와 친구들이 있는 곳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무탈한 모양입니다. 배우자야 이혼한 지 오래되었으니, 물론 그가 사라진다면 슬프겠지만, 지킬 가정도 없소.
내 고향 땅은……. 머리를 처박고 싶을 곳이 미래에 영영 없어져서 처박으러 갈 수가 없다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하겠소? 아니면 더욱더 처박고 싶어질 것 같습니까?
마음을 담아,
바타차르야